일단은 오랜만에 잘 읽어 내려가는 책을 접해서 느긋한 생각의 여유를 부릴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여성적인 느낌이 풍기는 책을 좋아하고
더불어
아직까지는 우리 시대 암묵적으로 무겁게 여기는 글의 소재에 비해
전체적인 내용은 어둡거나 우울한 쪽으로 흘러가지 않고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좋은 균형의 감동을 잔잔하게 주는 책이라 아주 괜찮은 기분으로 읽었다.
십대 임신.
이 책의 가장 큰 줄기이다.
자신들에 의해 결정될 수 없는 집안 배경, 살아온 주위 환경, 학교 생활 등
너무나 모든 것이 다른
주인공 론다와 사라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자
서로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바탕으로 알아가고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론다와 사라의 엄마 데보라 겜블의 두 번째 만남과 대화 장면이다.
조지아공대(미국 5대 명문 공과대학교)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 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고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대법관인 겜블은
론다에게 적극적으로 사라의 "낙태"를 종용하도록 강압한다.
겜블이 론다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조지아공대 총장과도 친분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막강한
전액 장학금 합격이 보장된 "추천서" 때문이다.
론다의 지금 현실에서 목표 0순위는 조지아공대 전면 장학생 입학이다.
모든 아픈 기억을 다 가진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과
집안 사정, 아빠에게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전액 장학금을 받고 조지아공대에 입학하는게 꼭 필요했다.
그 열쇠를 사라 엄마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건 사라가 결정할 일이에요."
거의 문턱에 다가선 꿈을
론다는 자기 스스로 포기한다.
이 선택이 정말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이 표방하는
'선택과 책임, 용기에 관한 가장 독특한 성장보고서'를
이 장면이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청소년 시절 가장 가까운 친구의 갑작스런 임신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을 토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으로 십대 여자의 섬세한 감정 묘사를 유지하면서도
우리에게 그 안에서
생각할 여유를 충분히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르게 흥미롭게 다가온 부분은 역자의 역할이다.
날티, 찌질이 등의 여러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의 사용과 더불어
상황에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어체로
읽는 내내 글에 몰입할 수 있었고
웃음과 슬픔, 유머와 심각함을 훨씬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래도 넌 이해할 수 없었을 거야. 노력은 했겠지만 그래도 사라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을 거야.
앞으로 사라가 겪게 될 일도 넌 이해할 수 없을 거야." -p.192-
"사라는 믿지 않겠지만 나는 내 딸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 아이의 인생을 위해서라면 내 권력을 사용할 수도 있어.
공정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지만 자식의 일이라면 그 신념마저도 접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p.214-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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